퇴직 후 아내와 잘 지내는 방법
퇴직 후 아내와 잘 지내는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막상 닥쳐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직하면 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40년 가까이 아침마다 현장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는 생활을 해왔는데, 막상 그게 끊기고 나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이렇게 어색한 일인지 몰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퇴직하고 나서 부부 사이가 오히려 틀어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게 됐다. 처음에는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우리 집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였다
처음 한 달은 별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아내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부엌일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리모컨 들고 앉아 있으니 아무 말 안 해도 분위기가 묘해졌다. 직접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느껴졌다. 두 달쯤 지나니 대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같이 있는데도 어색한 공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퇴직 후에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변 지인 중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고, 실제로 황혼이혼 얘기가 남 얘기가 아니라는 말도 들려온다. 40년을 바깥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오면,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작은 것부터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바꾼 건 아침 루틴이었다.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커피를 끓여 놨다.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커피포트 켜고 두 잔 준비해 두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데 아내 반응이 달라졌다. 나중에 “당신이 뭔가를 챙겨줄 거라고 생각 못 했다”고 하더라. 그 말이 솔직히 좀 찔렸다. 직장 다닐 때 내가 얼마나 가정에 무심했는지, 그 한마디로 느껴졌다.
작은 것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뭔가 거창하게 사과하거나 여행을 계획하거나 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이 쌓이면서 조금씩 말이 늘어났다.
각자의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사이가 좋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내는 오전에 혼자 집 정리하고, 오후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걸 좋아한다. 내가 집에 있다고 해서 거기에 끼어들거나 어디 가냐고 묻거나 하면 오히려 불편해했다.
나는 나대로 블로그를 쓰고, 복싱체육관에 가고,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고 나면, 저녁에 마주 앉았을 때 할 얘기가 생겼다. 붙어 있다고 친해지는 게 아니라, 각자 살아온 하루가 있어야 나눌 게 생기는 것 같다.
살림의 일부를 내 몫으로 가져왔다
세 번째로 바꾼 건 집안일이었다. 설거지랑 분리수거를 내가 맡았다. 처음에 아내가 반신반의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루틴이 됐다. 작은 역할 하나가 생기면서 집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감각이었다.
40년을 현장에서 지시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집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습관이 나왔다. 아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든 “왜 그렇게 해?”라고 한마디 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집은 내가 지시를 내리던 현장이 아니었다.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에서 나오는 반응을 바꾸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퇴직 후 부부 사이는 다시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다
오래 같이 살았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아는 게 아닌 것 같다. 직장 다닐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아내의 생활 방식, 소소한 습관들을 퇴직하고 나서야 처음 보게 됐다. 몇 시에 일어나고, 오전을 어떻게 보내는지, 뭘 불편해하는지. 그걸 새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편해졌다.
퇴직하고 보니, 아내가 그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해 왔는지 새삼 느껴졌다. 아이들 키우고, 집 살림 꾸리고, 나 뒷바라지까지. 내가 현장에서 바쁘게 지내는 동안, 집 안에서 그게 다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늦게라도 그게 보이기 시작한 게 다행이라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