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짜리 복어회를 상추쌈에 싸 먹은 현장 소장 이야기
1. 바람과 돌의 섬, 제주 1만 평 유리온실 공사의 서막
1990년대 중반,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무려 1만 평(약 33,000㎡) 부지에 거대한 유리온실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총괄 현장소장 발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휴양지이지만, 건설 현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야생이었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쉴 새 없이 불어대는 거센 제주의 바람, 그리고 땅을 팔 때마다 튀어나오는 현무암 암반들까지, 육지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까다로운 조건들이 첩첩산중이었습니다.
하지만 40년 건설 인생에서 안 되는 공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1만 평 규모의 유리온실은 골조의 정밀함과 설비의 완벽함이 생명이었기에, 나는 현장 인부들은 물론이고 설비 공사를 맡은 협력업체 사장들과 매일같이 도면을 펼쳐놓고 흙먼지를 마시며 치열하게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2. 용담포구의 저녁, 협력업체 사장과의 특별한 회식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은 퇴근 후 소주 한 잔으로 풀어내는 것이 당시 건설 현장의 낭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까다로운 배관 공사 때문에 나와 함께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설비업체 사장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소장님, 오늘 고생 많으셨는데 제가 저녁 한번 모시겠습니다. 용담포구 쪽으로 가시지요.”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협력업체 사장의 정성 어린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작업복에 묻은 먼지만 툭툭 털어내고, 우리는 제주시 용담동의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횟집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자 설비 사장은 나를 대접하겠다며 아주 귀한 회를 시켰습니다. 바로 ‘복어회’였습니다.
3. “복어회는 쌈 싸 먹는 거 아닙니까?” 현장 소장의 호탕한 식사법
잠시 후,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하게 썰린 복어회가 넓은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당시 나는 현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식사도, 술도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큼직하게 먹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습니다.
나는 평소 광어나 우럭을 먹던 방식 그대로, 커다란 상추를 한 장 손에 쫙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귀하디귀한, 얇디얇은 복어회를 서너 점 푹 떠서 상추 위에 턱 얹었습니다. 거기에 알싸한 생마늘과 쌈장, 고추냉이(와사비)까지 듬뿍 올려서 야무지게 쌈을 싼 뒤, 입이 미어터지게 한입 가득 밀어 넣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비 사장의 두 눈이 순간 동그래졌습니다. 마치 문화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4. 30만 원의 진실, 그리고 일본식 복어회 음미법
설비 사장이 헛기침을 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소장님… 일본 사람들은 이 귀한 복어회를 먹을 때,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서, 그것도 반으로 잘라 입안에서 향을 음미하며 먹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쌈으로 드시면…”
그제야 나는 젓가락을 멈추고 접시를 다시 내려다보았습니다. “아하, 내가 이 귀한 복어회를 고기 쌈 싸 먹듯 너무 험하게 먹었나 보군?” 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내친김에 나는 설비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복어회 한 접시가 얼마입니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소장님, 이거 한 접시에 30만 원입니다.”
1990년대 중반의 30만 원입니다.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의 백만 원대에 육박하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제야 복어회가 왜 그렇게 투명할 정도로 얇게 썰려 나왔는지, 왜 설비 사장이 내 상추쌈을 보고 그토록 놀랐는지 모든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5. “그렇게 귀한 거면 내가 사지! 마음껏 드시오!”
현장 소장으로서 속으로는 ‘아차’ 싶기도 하고, 그 비싼 금액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남은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며 테이블을 툭 쳤습니다.
“허허! 이렇게 귀하고 비싼 회를 나한테 대접하려고 했단 말이오? 고맙소! 하지만 그렇게 비싸고 귀한 음식이라면, 오늘 이 계산은 현장 소장인 내가 할 테니 사장님도 눈치 보지 말고 팍팍 쌈 싸서 많이 드시오!”
그 말을 들은 설비 사장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진한 감동이 번졌습니다. 비싼 술값을 호기롭게 지불한 것도 맞지만, 그날 내가 진정으로 산 것은 복어회가 아니라 현장 동료와의 끈끈한 신뢰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거액의 대접을 준비한 협력업체의 정성을 한 치의 가벼움 없이 받아들이되, 계산은 리더인 내가 책임짐으로써 우리의 관계는 갑을(甲乙)을 넘어선 진정한 전우가 되었습니다.
6. 에필로그: 1만 평의 기적은 30만 원의 복어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밤 용담포구에서의 회식 이후, 제주 1만 평 유리온실 현장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굴러갔습니다. 설비 사장은 내 믿음에 보답하듯 단 하나의 하자도 내지 않고 완벽하게 배관 공사를 마무리해 주었고, 현장의 다른 반장님들도 엄지를 치켜세워 주셨습니다.
수십 년이 흘러 은퇴한 지금도, 가끔 횟집에서 복어회를 볼 때면 1990년대 제주도의 그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큼직한 상추쌈을 입에 넣던 내 모습이 떠올라 혼자 헛웃음을 짓곤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복어회 맛이 어땠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얇아서였는지, 상추쌈에 묻혀서였는지, 아니면 그날 소주가 너무 맛있었던 건지. 다만 그날 용담포구의 바닷바람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