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소장

40년 건설 소장의 현장 비망록

2026년 04월 04일

건설 현장 소장으로 40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난관은 거의 없었던 건설 현장 소장이었지만,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던 가장 까다로운 공정이 하나 있었다. 건설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거대한 중장비가 오가고 수백 명의 인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 소장의 역할은 지휘관과 같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건물을 지어 올리며 저는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난관은 거의 없었습니다. 때로는 감독관이나 감리보다 현장 실무를 더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공정은 언제나 순조로운 흐름을 탔습니다. 하지만 그런 베테랑 소장인 제게도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던 ‘가장 까다로운 공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콘크리트 타설도, 철근 조립도 아닌 바로 ‘사람과의 관계’, 특히 감독이나 감리들과의 불편한 식사 자리였습니다.

실력으로 압도하던 현장의 지휘관

현장에서 소장의 리더십은 목소리가 아니라 ‘실력’에서 나옵니다. 도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여 짓고자 하는 건물에 정확하게 적용하려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바로 잡아, 현장 상황에 맞는 최적의 공법으로 공사를 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현장소장이 노력하고 그 결과물을 제시할 때 작업자들은 비로소 소장을 믿고 따릅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 때마다 감독이나 감리들이 내놓는 지시사항을 토대로 더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하여 하자 없는 공사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교과서적인 이론을 내세울 때, 저는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익힌 노하우와 모든 데이터를 현장의 특수성에 맞게 적용하여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하우가 어느정도 쌓이니 기술적인 공정에서 막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현장은 안전하고 정확하게 건물이 올라가는 편이었고, 그것은 저의 가장 큰 자부심과 보람이었습니다.

기술보다 어려웠던 ‘식사 대접’이라는 숙제

하지만 현장 업무 중에 찾아오는 ‘접대’의 시간은 늘 곤욕이었습니다. 공사가 원만하게 돌아가기 위해, 혹은 불필요한 태클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예민한 공사기성에 대해감독이나 감리들과 마주 앉아야 했던 식사 자리는 제게 현장의 흙먼지보다 더 답답한 공기였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막히는 게 없는 저였지만, 갑과 을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급장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거나 비위를 맞춰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둥근 식탁에 앉아 웃고 떠들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일 있을 공정표를 그리던 그 불편한 시간들. 차라리 뙤약볕 아래서 도면을 보며 소리치는 게 속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습니다.

원칙과 타협 사이에서 중심 잡기

건설업계의 구태의연한 관습들은 때로 기술자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곤 합니다. 실력 있는 소장일수록 원칙을 지키려 하지만,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 사회는 자꾸만 부드러운 타협을 권합니다. 저는 그런 식사 자리에서 오는 피로감을 ‘현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험’이라 여기며 버텼습니다. 쓴 술을 삼키면서도 내일 올라갈 골조의 거푸집을 걱정했고, 불편한 대화 속에서도 우리 현장 직원들의 안전을 한 번 더 당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불편했던 식사 시간들조차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보이지 않는 기초 공사였을지도 모른다. 건설 현장 소장이라는 자리는 기술만으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을 읽고, 상황을 읽고,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유연함도 필요했다. 그 균형을 40년 동안 잡아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기초 공사

40년 건설 현장 소장 생활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배운 것은 건축 기술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법, 갈등을 조용히 중재하는 법, 그리고 때로는 억울함을 삼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었다.

현장에서 함께 흙먼지를 마시며 일했던 기술자들, 때로는 불편하게 마주 앉아야 했던 감독과 감리들, 협력업체 사장들까지. 그 모든 인연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건물은 설계도대로 짓지만, 인생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어진다는 것을 현장이 가르쳐주었다.

지금도 가끔 옛 현장 동료들에게 전화가 온다. 아직도 현장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 은퇴하고 나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동기들. 그 전화 한 통이 반가운 것을 보면, 결국 건설 현장 소장의 40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 세월이었던 것 같다.

은퇴 후 비로소 편안해진 나의 식탁

이제 정년퇴직을 하고 시흥의 조용한 집에서 아내와 함께, 반려견 구름이와 여름이와 함께 식사를 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수저를 들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건넬 필요도 없다. 아내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이 그 어떤 접대 자리의 산해진미보다 맛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40년간 그렇게 치열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버텨온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에 수많은 가족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들이 지어졌다는 사실에 다시금 가슴이 뿌듯해진다. 건설 현장 소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현장을 지키는 후배들에게

현장의 공정은 도면대로 흘러가지만, 인생의 공정은 때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평생 현장을 지켰던 시니어분들, 그리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불편한 식사 자리를 견디며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고 있는 후배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당신들이 견뎌낸 그 불편한 시간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튼튼한 기둥이 되었다.

건설 현장 소장으로서 40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덕분이 아니었다. 함께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제 나는 은퇴라는 이름의 가장 편안한 식탁에 앉아,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씩 글로 담아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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