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현장 소장의 퇴장, 그리고 시작된 아내와의 묘한 눈치 싸움
출근할 곳 없는 아침, 낯선 공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안전모를 챙겨 현장으로 향하던 세월이 40년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좀 좋지 않은 날에도 빠지는 날 없이 일터로 나갔습니다. 그것이 가장이 해야 할 일이라 여겼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은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은퇴 첫 일주일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알람도 울리지 않고, 서둘러 밥을 먹을 이유도 없는 아침이 오히려 묘한 허무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모습이 나 스스로도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어디론가 나가야 할 것 같은 발걸음이 갈 곳을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자유를 얻었는데 왜 이리 허전한지, 처음에는 나 자신도 잘 몰랐습니다. 쉰다는 것이 이토록 어색한 일이었나 싶었습니다.
아내의 잃어버린 자유, 그리고 무언의 압박
생각해보니, 나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아내였을 것입니다. 내가 매일 밖에서 일하던 시절, 아내는 낮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써왔습니다. 친구도 만나고 볼일도 보며, 오롯이 자신의 페이스로 하루를 꾸려왔겠지요. 그 시간이 아내에게는 작지 않은 일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집에 종일 머물게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밥은 챙겨주지만 밥상 위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데, 냉장고 문을 닫는 소리나 툭툭 던지는 시선에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아내 입장에서도 오랫동안 혼자 꾸려온 낮 시간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니, 불편함이 없을 수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서로 오랜 시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이런 충돌이 생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솔직히 서운합니다.
가장의 자존심과 조용한 관망
평생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돌아온 것이 따뜻한 위로가 아닌 눈칫밥이라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졸지에 집 안에서 불청객 신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먼저 은퇴한 친구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물어보니 이런 감정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퇴 후 부부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는 일이 꽤 흔하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꼬리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40년을 어렵고 힘들게 일한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중입니다. 이것이 서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본격적인 기싸움의 시작인지, 지금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혼자 끙끙대며 억울해하기보다는, 천천히 관망하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싶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하며
평생을 밖에서 일하며 살던 사람이 언제까지고 집 안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낯선 공기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지만, 사실 조금씩 나만의 활동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침 일찍 동네를 한 바퀴 걷거나,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관심사를 다시 꺼내보거나, 오래 보지 못한 지인을 불러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집 안에서 눈치 싸움을 이어가기보다, 내가 먼저 밖으로 나가는 쪽이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숨통이 트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운한 감정은 억누를 필요 없이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감정에만 오래 머물기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가다 보면 집 안의 공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세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갑자기 온종일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되면, 서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은퇴가 삶의 끝이 아닌 것처럼, 이 어색한 시간도 언젠가는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다시 당당하게 문밖을 나서는 그날까지, 지금은 숨 한 번 고르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