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속초 동명항의 낭만, 만 원에 오징어 30마리 먹던 추억

1980년대, 강원도 속초 콘도미니엄 건설의 붐

오늘날 속초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시골 바닷가의 정취와 새로운 개발의 열기가 공존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강원도 영동 지역은 대규모 콘도 시설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레저 산업의 기틀을 닦고 있었고, 저는 그 변화의 건설 현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공정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현장 책임자는 챙기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대관령에 눈이 많이 내릴 때면, 자재를 실은 차가 대관령을 넘어오지 못해서 며칠씩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일기예보가 정확한 편이라 눈이 오는 날 시간대에 맞추어 눈이 내리는 즉시 바로 제설차량이 쌓인 눈을 바로바로 작업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일기예보도 정확하지 않았고 제설차량이 많지 않아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였죠 제설작업이 끝나야 자재차량이 령을 넘어오는데 어떤 경우에는 삼사일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재를 실은 차가 언제 올지 몰라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돼서 집에 다녀 올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가끔씩 인근에 있는 동명항에 가서 회 한사라씩 먹곤 했었습니다.

특히 여름부터 가을까지 동명항 오징어난전에는 포장마차 감성과 바다가 바로 앞이라는 장점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입니다. 많이 잡히기도 하지만 맛이 좋기로도 유명합니다. 죄적의 시기는 6월에서 8월에 가장 싱싱한 활오징어를 맞볼 수 있으며 9월에서 11월까지 어획량이 많습니다. 그래서 갓 잡은 싱싱한 오징어회와 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닷가의 날씨에 따라 어획량이 달라지는 귀한 선물, 오징어

지금이야 오징어가 ‘금(金) 징어’라 불릴 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만, 그 시절 속초는 그야말로 오징어의 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징어가 많아도 무작정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바다의 생리는 철저하게 자연의 섭리를 따랐습니다.

오징어의 가격과 어획량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날씨’였습니다. 파도가 높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그 용맹한 오징어잡이 배들도 바다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배들이 항구에 묶여 있는 날이면 동명항에는 오징어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당연히 가격은 비싸졌습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원칙을 학교가 아닌 현장 앞 포구에서 몸소 배우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대로 며칠간의 풍랑이 지나가고 날씨가 화창하게 갠 날이면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밤새 수평선을 수놓았던 집어등 불빛들이 새벽녘 항구로 돌아오면, 어선들의 수조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싱싱한 오징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동명항은 활기로 가득 찼고, 오징어는 그야말로 산처럼 쌓일 정도로 풍년이었습니다.

단골 횟집의 정겨운 호출, “소장님! 오늘은 오징어 풍년이에요!”

현장에서 도면과 씨름하며 땀을 흘리고 있으면, 오후 늦게 단골 횟집 아주머니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오곤 했습니다. “소장님! 오늘 날씨가 좋아서 오징어가 많이 잡혔어요. 오징어값이 헐값이니까 얼른 사람들 데리고 오세요!” 그 목소리는 마치 꾀꼬리 소리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먼지를 털어내고 달려간 동명항은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바다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단골 오징어 난전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주머니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많이 잡히는 날에는 당시 가격으로 단돈 만 원이면 오징어 30마리를 먹는 날 이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믿기지 않는 일이죠. 오징어를 너무 많이 잡아서 처리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바구니에 넘쳐나던 인심, 초장 하나로 충분했던 성찬

횟집 아주머니의 오징어 회를 써는 솜씨는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순식간에 손질해 국수 가닥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주셨는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커다란 바구니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2~3만 원이면 건장한 현장 사람들 대여섯 명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갓 잡아 올린 오징어회는 투명하다 못해 영롱한 빛을 냈고, 입안에 넣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왔습니다.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매콤 달콤한 초장에 듬뿍 찍어 입안 가득 밀어 넣으면, 온종일 현장에서 쌓였던 피로가 바닷바람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나누던 동료들과의 투박한 대화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달콤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1980년의 속초는 저에게 단순한 근무지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기술자들과 호흡하던 젊은 날의 열정이 녹아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가 지었던 콘도미니엄은 누군가의 휴식처가 되었고, 동명항의 오징어회는 우리 기술자들에게 가장 따뜻한 추억이 되어주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정이 넘쳤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 횟집 아주머니가 건네던 “많이 먹고 힘내서 공사 잘 끝내라”는 그 한마디는 단순한 장사꾼의 멘트가 아니라, 타지에서 고생하는 일꾼들을 향한 진심 어린 위로였습니다.
요즘 마트나 횟집에서 오징어 두세 마리에 만 원이 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그리운 것은 오징어의 저렴한 가격이 아닙니다. 날씨가 좋아 오징어배가 만선이 되는 날이면 기뻐하며 불러주시던 그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땀 흘려 일한 뒤 바구니 가득 담긴 음식을 같이 먹던 현장의 전우들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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