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기술 노하우를 사회에 봉사활동으로 환원하는 은퇴 가장의 가슴 뛰는 이야기
40년 몸 담았던 현장을 떠나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평생을 거친 흙먼지와 날카로운 쇳소리가 진동하는 건설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수백억 원 규모의 회사를 이끌며 수많은 대형 빌딩과 아파트의 기계설비를 책임졌던 나는, 매일같이 도면과 견적서를 확인하며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러 은퇴를 맞이했고,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책임감과 ‘부사장’이라는 직함도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은퇴 후 찾아온 평화로운 일상도 잠시, 평생을 바쁘게 움직이던 몸은 금세 무료함을 느꼈습니다. ‘이미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끝난 것일까?’ 하는 쓸쓸함이 밀려올 때쯤, 우연한 기회로 지역 사회의 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수백억 원짜리 화려한 빌딩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매섭게 파고드는 홀몸 어르신들의 작고 낡은 슬레이트 집이었습니다.
기계설비 전문가의 진짜 쓸모를 다시 발견하다
봉사 현장에 도착해 작업복을 입고 연장을 챙겨 드는 순간,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세포들이 다시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형 공조 시스템, 그러니까 건물 전체의 온도와 공기를 조절하는 거대한 장치를 설계하던 전공 기술이 이 작고 낡은 집에서는 너무나도 절실한 생존의 기술이 되었습니다.
얼어붙어 터져버린 낡은 수도관을 잘라내고 새 파이프로 연결했습니다. 한겨울 동파를 막기 위해 배관 겉면에 두툼한 보온재를 꼼꼼하게 감아주었습니다. 덜컹거리는 낡은 창틀에는 우레탄폼과 실리콘을 새로 쏘아 칼바람을 막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 부품을 분해해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시 조립했습니다. 젊은 봉사자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 힘을 썼고, 나는 40년 동안 몸으로 체득한 기술의 맥(脈)을 짚어내며 고장 난 집의 숨통을 다시 틔웠습니다.
누군가의 겨울을 따뜻하게 데우는 ‘진짜 공사’
반나절의 고된 작업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꽁꽁 얼어있던 보일러 배관을 수리하고 스위치를 켜자, 이내 ‘웅~’ 하는 기분 좋은 모터 소리와 함께 방바닥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녹물이 나오던 수도꼭지에서는 맑고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곁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나의 거친 손을 덥석 잡으시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올겨울은 얼어 죽을까 봐 겁이 났는데, 이렇게 고쳐줘서 정말 고마워요.”
순간 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습니다. 수백억 원짜리 공사 계약을 따냈을 때도,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준공 검사를 무사히 마쳤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벅찬 희열이었습니다. 내가 땀 흘려 배운 기술이 누군가의 얼어붙은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유독 눈물 나게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땀방울의 기적
흔히 봉사활동은 나의 시간과 노력을 남에게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은퇴 후 찾아왔던 상실감과 허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는 아직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강한 자존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웃을 위해 흘린 땀방울은, 결국 시니어로서 내 인생의 후반전을 더욱 단단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훌륭한 영양분이었습니다. 내가 고쳐드린 것은 낡은 집이었지만, 정작 위로를 받고 치유된 것은 은퇴 후 길을 잃었던 나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에필로그: 녹슬지 않는 연장처럼, 우리의 인생 2막도 계속됩니다
창고에 처박힌 연장은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금세 녹이 슬고 맙니다. 사람의 기술과 경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동년배 은퇴 가장 여러분, 평생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치열하게 갈고닦았던 그 훌륭한 기술과 지혜를 그냥 썩히기엔 너무 아깝지 않으신가요?
집수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일, 동네 공원의 나무를 가꾸는 일, 무엇이든 여러분이 잘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의 손길이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 사회라는 큰 집의 낡은 곳을 보수하는 일에 동참해 보십시오. 나눔의 현장으로 출근하는 순간, 여러분의 인생 2막은 그 어떤 대형 건축물보다 크고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정보 가이드] 시니어 재능기부 봉사활동 시작하는 방법
나처럼 은퇴 후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신 분들을 위해 안내해 드립니다.
가장 편리한 방법은 인터넷에서 ‘1365 자원봉사포털’을 검색해 회원가입을 하는 것입니다. 통합검색 메뉴에서 거주 지역을 선택하면 현재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다양한 기관과 활동 내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집수리부터 배식, 멘토링까지 종류도 꽤 다양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불편하시다면, 각 구청이나 시청에서 운영하는 지역 자원봉사센터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해 보십시오. “내가 평생 OO 분야에서 일했는데, 이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봉사 자리가 있을까요?”라고 문의하면 적합한 곳을 연결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시니어클럽’이나 ‘상상우리’처럼 은퇴자들의 경험과 경력을 활용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단체도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동년배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봉사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