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아파트 누수 수리 봉사, 그리고 박카스 한 병이 주는 은퇴 후의 보람
오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 문을 열자마자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눅눅한 습기 탓인지 작은 깔따구 벌레들이 구석구석에 들끓고 있었다. 관할 지자체에서도 정확한 누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갔다고 하셨다. 그 밤들을 얼마나 지쳐 계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하소연하셨다. 눈가에는 오랫동안 쌓인 근심과 물기가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어떻게든 오늘 안에 완벽하게 해결하고 가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들었다.
1. 낡은 아파트 누수 원인 정밀 진단: 샤프트(SHAFT) 벽체 점검
확신이 섰다. 곧바로 샤프트 벽체를 과감하게 뜯어내고 내부를 직접 들여다봤다.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입상관(건물 위아래를 세로로 연결하는 굵은 메인 하수관)에 설치한 섹스티아(SEXTIA) 부속과 싱크대 배수관이 완전히 이탈된 상태였다.
섹티아 부속이란 여러 갈래의 하수관을 한 줄기로 모아서 물이 사방으로 튀지 않게 아래로 내려보내는 연결 부속인데, 오랜 세월 동안 이 부속에서 싱크대 배수관이 빠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틈으로 흘러내린 싱크대 폐수가 샤프트 바닥에 고이고, 거기서 부패하며 습기와 악취가 차오르면서 깔따구 벌레까지 심하게 꼬이게 된 것이었다.
관할 지자체에서 원인을 찾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겉에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깊은 내부의 구조적 결함이었으니까. 명확한 원인을 찾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제 땀 흘려 고칠 일만 남은 것이다.
2. 40년 건설 현장의 경험이 짚어낸 배관의 진원지
40년 건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내 눈에는 처음 현장에 들어섰을 때부터 심상치 않아 보였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을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려운 꽉 막힌 상황이었다. 도배지가 젖어 부풀어 오른 형태와 벌레들이 유독 많이 몰려 있는 위치를 꼼꼼히 살폈다.
단순한 결로나 수도관 노후 문제가 아니었다. 물기가 번진 방향과 퀴퀴한 습기의 냄새를 따라 발원지를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벽 속에 감춰진 샤프트 공간을 문제의 진원지로 지목하게 됐다.
샤프트(SHAFT)란 건물 내부에 각종 배관이 지나가는 수직 통로를 말한다. 점검구가 없어서 준공 이후에는 내부를 열어 볼 수가 없다 보니, 이런 노후 건물에서는 결함이 오랫동안 안쪽에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마 그래서 지자체에서도 표면만 보고 원인을 못 찾고 돌아갔던 것 같다. 40년간 쌓은 현장 경험 없이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숨은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3. 배관 부속 교체 및 틈새 차단 마감 공정
지체 없이 본격적인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기존의 낡고 삭은 배수관 부위를 커팅하고, 문제의 섹티아 부속과 낡아서 막혀버린 싱크 배수관을 모두 새 자재로 전면 교체했다. 연결 부위를 단단하게 결합한 뒤, 싱크대 물을 세차게 틀어 혹시라도 물이 새는 부위가 없는지 두 번 세 번 꼼꼼하게 확인했다. 완벽하게 정상 작동했다.
이어서 벌레가 들끓던 샤프트 바닥에 에프킬라를 충분히 뿌려 남은 깔따구들을 말끔하게 박멸했다. 마지막으로 허물었던 샤프트 벽체를 다시 조적(벽돌을 쌓아 올리는 미장 작업)으로 단단히 메우고, 주변 타일과 색감을 맞춰 새로 붙여 튼튼하게 마감했다.
원래 상태보다 오히려 훨씬 깔끔하고 견고하게 복구가 된 것 같다. 오래된 집이라 낡은 부분이 곳곳에 눈에 밟히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벽면만큼은 새 아파트 못지않게 반듯하고 든든하게 마무리가 됐다.
4. 할머니의 고마워하시는 마음을 담은 박카스 한 병의 가치
모든 작업이 끝난 뒤, 할머니를 모시고 싱크대 앞에 함께 섰다. 물을 시원하게 틀었다. 더 이상 벽면 어디서도 새는 곳이 없었다.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시다가, 낡은 냉장고를 열어 박카스 한 병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셨다.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작은 병 하나가 오늘 하루 내어준 어떤 품삯보다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받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현역 시절에는 수십 층짜리 대형 건물을 올리는 데 내 청춘과 기술, 경험을 모두 쏟아부었다. 밤새 도면을 그리고 물량을 뽑고 공정표를 짜고, 건물이 마침내 준공됐을 때의 벅찬 뿌듯함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작은 집에서 흘린 땀을 식히며 마신 박카스 한 병의 맛은 그 어떤 준공식 자리의 축배보다 달게 느껴졌다.
내 거친 손끝에 남아 있는 40년의 기술이 누군가의 근심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늘 나에게 가르쳐 준 큰 이유인 것 같다. 은퇴 이후의 삶에서 내 기술이 이런 따뜻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 깊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꽉 찬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