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가장의 숨통을 틔워주는 천사들, 여름이 구름이와의 산책

40년 평생, 매일 아침 안전모를 쓰고 흙먼지 날리는 건설 현장을 바쁘게 오갔습니다. 은퇴 후 비로소 찾아온 고요한 아침이 처음엔 참 낯설었습니다. 특히나 평생을 밖으로만 나돌던 가장이 하루 종일 집안에 머물게 되면서 생긴 아내와의 묘한 눈치 싸움은, 은퇴라는 제2의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무거운 집안 공기를 단번에 환기해 주는 고마운 녀석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우리 집의 귀염둥이 포메라니안 반려견, 여름이와 구름이입니다. 이 두 녀석이 내 일상의 작지 않은 부분을 바꿔놓았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아마 비슷한 처지의 시니어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습니다.

당당한 외출의 핑계, “얘들아, 산책 가자!”

소파에 앉아 헛기침만 하며 TV 채널을 돌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발밑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두 녀석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마치 “아빠, 답답한데 우리랑 밖으로 나가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맑은 눈망울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여름아, 구름아, 산책 갈까?”

이 한마디가 생각보다 꽤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집을 비워준다는 무언의 평화 협정이자, 나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문밖을 나설 수 있는 완벽한 명분입니다. 목줄을 챙겨 들고 나서는 길, 등 뒤로 느껴지는 아내의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반려견 한 마리가 부부 사이의 공기를 바꿔놓는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은퇴 후 부부 관계가 새로운 숙제가 된다고들 하는데, 여름이와 구름이는 그 숙제를 살짝 쉽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공사 현장 대신, 동네 공원을 순회하다

예전에는 수십 명의 직원들과 건설 현장을 매의 눈으로 순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새로운 현장은 집 앞의 조용한 공원 산책로입니다. 규모는 비교도 안 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작은 순회가 더 마음 편하고 좋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냄새를 맡으며 총총걸음으로 걷는 여름이와 구름이의 작은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복잡한 도면도 없고, 촉박한 공기(공사 기간)에 쫓길 일도 없습니다. 오직 녀석들의 발걸음 속도에 내 걸음을 맞추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40년 동안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왔던 삶에,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걷는 법을 이 작은 생명들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빠르게 달리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화단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지나가는 이웃과 나누는 짧은 눈인사 같은 것들이 산책길에서는 제법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현장에서 익혔던 ‘전체를 보는 눈’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주는 위로

은퇴 후에도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가장의 자존심, 부부 사이의 미묘한 서운함, 사회적 지위의 상실감 같은 것들이 머리 한편을 어지럽히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나이에 뭔가 대단한 것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가 누군가에게 반가운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름이와 구름이에게 나는 전직 현장 책임자도, 은퇴한 늙은 가장도 아닙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 목줄을 쥐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든든한 우주일 뿐입니다. 산책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그날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온몸으로 달려와 반겨주는 녀석들의 모습은, 그 어떤 훈장보다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줍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려동물이 노년의 고독감과 우울감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이론으로 배운 게 아니라, 매일 아침 현관 앞에서 온몸을 흔들어대는 두 녀석 덕분에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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